15.1 C
Brisbane
5월 21, 0, 2024

상담/신앙

[상담컬럼] 행복한 삶의 비결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많습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을 알지 못해 그럴 수도...

[상담컬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우리나라 부모님들만큼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기러기 아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호주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엄청난 희생입니다. 자신이 버는 연봉 전체를 유학 간 자녀와 아내를 위해 보내고 본인은 살던 집을 팔거나 세를 주고, 월세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머물며 끼니도 대충 때우며 생활합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약해지고,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지만 자녀를 위해 그 고통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막상 유학을 온 아이와 엄마도 그렇게 넉넉한 생활을 하지는 못합니다. 워낙 비싼 학비와 렌트비 그리고 생활비로 인해 겨우 생활을 해가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며 교육시키는 부모님의 열정은 긍정적인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너지와 투자를 하는 만큼 자녀들에게 집착하게 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보통 호주인들은 성인이 되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대학을 보내놓고도 부모님들은 자녀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나아가 결혼 후에도 부모님들은 여전히 뭔가 도움을 주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부모님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기시지만 지나친 애정과 지원으로 종종 자녀들은 독립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6명의 자녀가 있는데 둘째인 아들을 제외하고 5명이 딸입니다. 그런데 벌써 다섯째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생겼습니다.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옆집 아이입니다. 집이 가까워서 자주 놀러 다니더니 많이 친해졌나 봅니다. 저의 아내 말로는 “엄마! 샌드위치 하나만 만들어 줄래?” 아니면 “롤리팝 하나 가져가도 돼?”라고 하고는 옆집 남자 아이에게 갖다 주곤 한답니다. 마치 제 짝을 만나면 엄마 아빠를 쉽게 떠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장성하면 떠나겠지요. 그것이 정상이고 진리 입니다. 성경에서도 “부모를 떠나 둘이 하나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결혼 이후까지 재정적인 지원을 하거나 많은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행복한 부모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일찍부터 스스로 서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과 표현 양식에 변화를 주어야 할 때입니다. 과보호 사랑이 아니라 자녀들을 훈련가운데 둘 수 있는 강인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희생을 통한 사랑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자녀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거나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실망이 따를 수 있고 자녀에게는 지나친 부담감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친 희생을 바탕으로 주어진 사랑에는 반드시 집착과 보상심리가 작용하게 되어있습니다. 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의 처지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자신들의 삶을 감사하며 누리는 여유있는 모습이 더욱 더 안정감 있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다시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을 만큼 또는 자녀가 보상해 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만 사랑을 주는 것은 어떨까요? 기대가 적으면 실망도 적고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도 자유롭고, 우리의 자녀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현재에 누리시며 그 행복한 삶을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잘 전수해주어 기쁨과 감사가 늘 넘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시를 축원합니다.  

[상담컬럼] 약간의 관심이 큰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항상 다람쥐 쳇바뀌를 돌듯이 하루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고, 반복적인 일상이 너무도 지겹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변화가 없어 보이는 잔잔한 강물도 동일한 강물은 없습니다. 항상 변함이 없어 보이는 거대한 산도 시시각각 변화가 있습니다. 단 한 시간도 같은 산과 바다 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물을 표현했습니다. 빛의 정도와 각도에 따라 하늘은 푸른 색 뿐 아니라 붉은 빛, 검은 빛, 때로는 노란빛도 띠는 것입니다. 강물도 빛의 농도와 방향에 따라 때로는 은빛으로 때로는 금빛으로 때로는 검푸른 색깔로 때로는 진 녹색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일상의 삶도 변화 무쌍합니다. 비록 같은 집안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다른 방법과 다양성을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만들지만 항상 같은 재료가 아닌 것을 사용할 수 있고 재료의 신선도와 재료의 양도 다르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조미료도 늘 같을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양을 사용하지는 못하니까요. 항상 다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성이 필요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에 신경을 쓴 만큼 더 멋진 음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일터에 나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항상 다른 고객과 다른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세상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바꿀 수 없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고, 불만이 가득해도 상대를 바꿀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지겹다고 여기며 변화가 없는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인생은 지겹고 단순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의 태도를 바꾸면 일상의 일도 즐겁고, 기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일도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것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데 어떻게 능률이 오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멋지게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나게 기쁘게 시도해보세요. 진짜로 새롭고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집에 들어와 식구들을 대할 때에 그리고 직장에서 동료들을 대할 때에 밝은 얼굴과 관심의 눈빛으로 대하기 시작할 때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바뀌어 가기 시작합니다. 매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다시 돌아올 때 픽업해줍니다.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마음을 담은 웃음을 선사하며, “좋은 시간되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데에 20초도 채 소요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잠을 재워달라고 요청할 때 반갑게 기뻐하며 꼭 껴안아주면서 “사랑해! 우리 예쁜이” 라고 표현하는 데에 20-30초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일상 속의 작은 순간에서 우리는 사랑과 존중 그리고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무엇인가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경우에는 아이들의 이야기나 표현을 무시하기 쉽고 건성으로 듣는 척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이 닫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요구, 아이들의 요구 모두를 우리 한번 즐겨봅시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일상의 행복한 미소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내 직장이, 내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일상의 일들을 즐길 수 있길 축원합니다.

[상담컬럼] 자녀 성교육

아주 슬프고도 어려운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이 성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성적인 부분이 사회를 가장 어둡게 만들고 사회를 부패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성은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성을 어지럽히면 인간의 육체만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파괴되고, 영도 흐려집니다. 성적인 타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조롱과 놀림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최선을 다해서 가장 열심히 공격하며 동시에 가장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는 영역이 성적인 부분입니다. 제가 가정에 관한 강의를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부모님으로부터 성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라고 물어보면 손을 드는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1만여명 중에 단지 20여명 정도만이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머지 그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방법 혹은 음성적인 방법으로 성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성에 대한 비 정상적인 이해함과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합니다. 결국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함과 적용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게 됩니다. 가장 안전하게 성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님만큼 자녀를 사랑하는 분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는 아이의 나이에 맞게 만 2세부터 성교육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위해 부모님이 먼저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그리고 성에 대해서 편안한 지를 먼저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이라면 왜 그럴까? 편안하지 않다면 왜 그럴까? 질문하면서 먼저는 자신 안에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에게 바르고 안전하게 성을 교육할 것인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가르칠 수가 없겠지요. 책이나 세미나 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후 계획을 세워서 삶에서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부 안에서의 성을 충분히 누리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나갈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서로 깊이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적절한 교육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같은 교육이 아니라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교육이 바람직합니다. 호주 분과의 대화 속에서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자들에게 성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교육은 많이 하는데,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존중하고 성적인 학대를 금지하는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그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왜 가해자인 남성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와 예방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주로 피해자인 여성들에만 조심하라는 교육을 더 많이 했을까요? 성교육은 일방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성적인 문제의 발생은 여성으로 인한 문제이기보다는 남성들이 절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는 남성들에게 더 경고하고 더 많은 교육을 강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에게 모든 자녀 교육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결혼 안에서 충분히 성적인 축복을 누리고 동시에 아이들을 때에 맞게 적절히 잘 교육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아름다운 성을 건강한 삶의 부분으로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상담컬럼] 부부란?

부부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관계 중 가장 친밀한 관계입니다. 결혼 전에는 부모와 형제 자매의 관계가 가장 절친한 관계였지만 결혼 후에는 부부관계가 최고로 가까운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창2:24). 성경은 부모를 떠나 남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 혹은 친밀한 관계가 생겨난다면 거기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친 부모라 할지라도 혹은 형제 자매라 할지라도 나아가 절친한 혈맹관계를 맺은 친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유명한 부부관계 혹은 남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되고, 점하나 빼면 ‘님’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부관계는 이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먼 관계 혹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상담을 하면서 통계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 부부관계 문제입니다. 그 다음이 자녀문제입니다. 정말로 서로에게 너무도 상처를 많이 주어서 내면이 피투성이가 된 부부들을 많이 봅니다. 남보다도 못한 관계인 것입니다. 도저히 서로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서로를 미워합니다. 존경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우자와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 몇 번의 부부의 치료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기 시작할 때 조금씩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다시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노력과 마음을 보기 시작하면 배우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생겨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긍휼이 여기고 자신도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노력과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상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노력과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은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기 시작할 때 생겨납니다. 그리고 상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자신과 상대의 사랑(게리 체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의 언어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은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서로 표현해도 상대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만 표현한다면 상대에게 바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부관계를 부익부(富益富) 혹은 빈익빈(貧益貧)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존 가트만의 실험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행복한 부부와 이혼하는 부부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발생합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갈수록 더 커집니다. 더 사랑스럽고, 고맙고 예쁘고 감사한 마음이 더 많이 쌓여갑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동지로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 귀한 존재로 상대가 보여집니다. 그럴 때, 그러한 눈빛과 표현은 전달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느끼고 아는 배우자는 또한 상대에게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게 되고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행복감 그리고 친밀감이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해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으로 비난하고 경멸하는 부부는 서로를 더욱 더 미워하고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서 배우자에게 상처가 되고, 꼴도 보기 싫은 관계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행의 시작과 끝이 배우자 탓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는 날로 더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데, 불행한 부부는 갈수록 더 비참해지고 더 미워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 관계의 최우선인 부부관계에 성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신앙컬럼] “강한 사람”

오래 전 개그콘서트에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 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었습니다. “톱스타 장동건과 고소영이 사귄다고? 1등끼리만...

[상담컬럼] 부부 대화의 중요 원칙

성격차이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는 많은 부부들에게 고트만 박사는 이혼하는 부부의 원인이 성격의 차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부부들을 임상 실험을 통해 연구한 고트만 박사는 부부...

[상담컬럼] 내가 가정을 다시 시작한다면

“If I were starting my family again” 이 내용은 죤 엠 드레셔라는 분이 쓴 책의 제목입니다. 아주 짧게 만든 책이지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신앙컬럼] 아버지

50후반이 되어가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가 여기 저기에서 붉어져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미 소천하신 아버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상담컬럼] 다름의 비밀

우리는 모두 다르게 지어졌습니다. 다른 것이 인류에게 주신 큰 축복임을 깨닫는 것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다양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결혼 한 부부들은 누구나가 한 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부부치료에 임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바로 이 다름에서 발생합니다. MBTI는 칼 융이 주장한 4가지 선호지표를 발전시켜서 그의 아내와 딸인 Katharine C. Briggs 와 Isabel B. Myers가 완성한 것으로 4가지 선호지표를 활용해서 사람을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선호지표인 생활양식을 예로 들어보면, 미리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 성향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MBTI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J(판단) 성향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떠한 계획이든 빨리 결정하기를 원하고 일을 순서대로 계획해서 추진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결정한 것에 변화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나 더 나은 대안이 있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 전혀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P(인식) 성향의 사람들로 결정하는 것을 최대한 유보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든 더 좋은 것이 등장하면 모든 계획을 바꾸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초능력을 발휘해서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J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에 P 성향은 마무리하는 순간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J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일을 꼼꼼히 잘 진행시킵니다. 그래서 J 성향의 사람들이 보기엔 P 성향의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보이고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막바지에 밤을 세우는 것이 한심하기에 그지없어 보입니다. 반면 P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최선의 선택은 좀더 자료를 수집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결정한 것은 더 좋은 것이 등장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J성향이 융통성이 없어 보여서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선호 경향은 모두 요긴한 것입니다. J(판단)성향이 없다면 일의 진행이 잘 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렇게 정해진 일을 계획적으로 시간에 맞추어 성실히 일하는 이러한 분들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반해 P(인식) 성향의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열려있기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커플이 만날때, 일반적으로 다른 기질의 사람들을이 만납니다. 직장이나 사회조직에서도 다른 기질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 이것은 축복입니다. 서로를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 라는 것을 이해할 때 배우자가 다른 시야를 가진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나의 것을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됩니다. 다르다라는 것은 불편함 보다 나를 균형있고 건강하게 도와주는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바꿀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서로를 잘 이해하고 서로 절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됩니다. 다양성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점으로 인해 비 웃음이 아닌 즐거움의 웃음이 시작될 때 행복은 시작됩니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볼 때 내가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 또한 보충해줄 수 있는 배우자 혹은 다른 사람이 있음이 창조 섭리의 비밀입니다.   호주 기독교 대학 대표 김훈박사 

[신앙컬럼] “신뢰”

브리즈번에 자리를 잡고 산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 가운데 한 도시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 이곳이 되었습니다. 한 도시에 20년이 넘도록 산 것이...

[상담 컬럼] 10대 1의 원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잘 되기를 바라고 사랑하기에 잘못된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지 않으면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러한 잘못된 것을 교정하려는 의도로 하는 부정적 표현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하는 것을 ‘긍정적 표현’으로 강화할 때 변화가 더 용이합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의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나아가 대인 관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느 날 저희 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양치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크게 칭찬을 했습니다. “우리 딸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양치질을 다 하냐? 정말 우리 딸 최고다!” 라고 했습니다. 딸 아이는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날 제 앞에 와서 양치질을 또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긍정적 표현과 칭찬을 좋아합니다. 어떤 분은 긍정적 표현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담을 통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분일수록 긍정적 표현에 굶주려 있는 분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긍정적 표현을 더욱 많이 들어서 불편함 없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호주기독교대학에서는 10대 1의 원리를 가르치고 권합니다. 이 원리는 간단한 것으로 한번의 조언이나 책망과 같은 부정적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10번 이상의 긍정적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인내하며 10번을 세어보면서 긍정적 표현을 하고 그 후에 진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긍정적 표현을 일상화할 때 조언이나 책망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소년원에 들어가는 한 청년의 국선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그 청년의 자료를 보았는데 IQ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자네는 머리가 상당히 좋네, 공부를 하면 아주 잘하겠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 계기를 통해 그 후로 그 청년은 소년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공학계통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후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이 변호사를 찾아왔습니다. 본인의 기억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서 어떤 도움을 자신이 주었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은 “제가 머리가 좋다고 당신이 이야기 했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변호사에게서 들었던 그 말이 그에게는 생전 처음 듣는 긍정의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표현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거센 바람이 사람의 옷을 벗기지 못하고 따스한 태양이 사람의 옷을 벗긴 것처럼 거친 말보다는 따스한 표현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학교 강의에서 이 내용을 다룬 후 그 다음 학기에 한 권사님 학생이 오셨습니다. 꾸벅 인사를 크게 하는 데 얼굴이 유난히 환하게 빛났습니다. 잔뜩 흥분된 모습으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저의 아들도 변하고 저의 며느리도 변하고 손주들도 다 변했어요!” 권사님 본인이 긍정적 표현을 하기 시작하니까 주위에 있는 가족 모두가 밝아지고 변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싫은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다가 한번 무엇인가 어머님의 마음 속에 있는 표현을 하면 우리 6남매 모두 긴장합니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저런 표현을 했을까? 하며 모두 소홀히 넘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훈육이나 조언을 진정으로 잘 전달시키기 위해서는 부정적 표현을 아껴야 합니다. 그래서 비율로 따지자면 긍정적 표현 10번에 부정적 표현 1번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긍정적인 표현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나를 통해 나의 마음을 만지시고, 그 표현들은 가족과 이웃이 선한 영향을 받게 하며 세상이 축복으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호주 기독교 대학 대표 김훈박사 

[신앙컬럼] 나비효과 “코로나 바이러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환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번 퍼덕인 것이 온 세계에 태풍보다 더 강한 바람으로 몰아치고 있는 현상이 나비효과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상담컬럼] 결혼의 기초

결혼의 기초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쉽고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결혼 전, 아내와 사귀면서 아내가 이 질문을 했을 때 너무도 쉽게 ‘사랑’ 이라고 자신있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이라고 생각했고 정답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의 기초가 선택과 헌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아내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하고, 가정 상담을 공부하면서 저의 아내가 결혼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감정적인 끌림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특별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강한 생리학적인 자극이 생깁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쁨과 함께 식욕도 떨어지고 않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신체적 징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진정한 사랑의 확실한 징후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결혼은 소위 콩깍지가 씌워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콩깍지가 씌워져 있으면 상대가 과대평가되어 정말 멋진 사람, 나의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사람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콩깍지는 상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멀게 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그려놓은 멋진 사람으로 상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콩깍지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콩깍지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제정신이 들면, 너무도 많은 부부들이 ‘나는 배우자를 잘못 만났다’고 한탄하며 이혼하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을 안고 돈과 시간을 드리며 상담실을 찾게 됩니다. “결혼하더니 사람이 변했어, 내가 그 때 미쳤지....어떻게 저런 사람을 내가 선택했을까?” “내가 너무 잘못 보았어..... 내 눈이 멀었지....” 현대 생리심리학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뇌에는 화학 물질이 넘치게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르에피네프린(부신수질호르몬), 도파민 특별히 페닐레틸라민(PEA /Phenylethylamin)입니다. 이 호르몬들은 모두 암페타민(amphetamine/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 계통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졌을 때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그 결과 피부는 붉어지고, 손바닥엔 땀이 나고,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사랑에 빠졌다는 진짜 도취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려고 하는 커플들 중에 많은 경우 설레는 느낌이 사라질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고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자연적인 ‘암페타민’이 끊임없이 흐르면 신체에 막대한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우리의 신체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무한정 견뎌 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느낌은 사라져야 하는데, 바로 신체에 휴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화학 작용이 감소하는 것은 극히 정상입니다. 일반적으로 결혼 후 3개월에서 6개월이면 화학 작용이 해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 화학 작용은 신비로운 큰 축복입니다.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그 위험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다는 감정’보다, 배우자를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결심’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사랑은 느낌보다는 선택이며, 헌신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러한 선택과 헌신과 노력을 통해 새로운 감정이 새롭게 솟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엔도르핀’이라고 하는 ‘행복’ 화학물질이 안전하고도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 있었던 강력한 느낌이 없다고 사랑이 없어졌다고 여기며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극히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의지적 노력으로 연인 때보다 더 깊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호주 기독교 대학 대표 김훈박사 

[신앙컬럼] “적게 먹고 천천히 오래 먹기”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있습니다. 호주에서 한국까지가 아니라 정말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인 것 같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실제적인 거리는 두세뼘 밖에 되지 않은 짧은...

[상담컬럼] 해결책이 필요한 것인가? 귀가 필요한 것인가?

부부간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편들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결책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대화에 진전이 없고, 다툼으로 바뀌는 경우입니다. “잘 듣지 못하는 남자, 지도 볼 줄 모르는 여자”라는 책의 제목처럼 남자들은 그냥 들어주는 것을 잘 못합니다. 상대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생각으로 그것을 분석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결과를 예측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듣기보다는 중간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보통 자신의 어려움을 표시할 때는 해결책을 몰라서 문제의 답을 남편으로부터 듣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현재의 어려움을 하소연합니다. 그냥 남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원하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희집에는 아이들이 많은데, 때로는 울고 소리를 크게 낼 때가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과장되게 공감 표현을 합니다. 때로는 넘어져서 아파서 아픔을 호소할 때, “세상에! ‘정말’ ‘많이’ 아프겠다. 어쩌면 좋지! 우리 아가 대단하네!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도 많이 울지도 않고 정말 대단하다!” 그러면 “아니 괜찮아!”라고 하면서 다시 돌아가 친구들 혹은 언니들과 놀러 돌아갑니다. 때로는 싸우고 맞아서 상대를 혼내고 싶을 때, 때로는 따돌림을 받아 슬퍼서 하소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도대체 우리 예쁜 아가에게 누가 그랬지? 정말 나쁘네, 아빠가 혼내줄께, 누구야? 아빠가 많이 혼내준다고 그래!” 그러면 “응 아빠” 하고 금방 밝아져서 돌아갑니다. 결국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현재의 아픔이나 억울함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공감해주는 표현을 통해 아프던 것이 어느새 사리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억울하던 것이 어느새 자신의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저희 호주기독교대학에서는 1학년 처음부터 적극적 경청이라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잘 들어주는 기술입니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배우고 실습을 해보며, 동료들과 계속적으로 연습하도록 합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 경청을 집에서 가족에게 시행할 것을 권합니다. 특히 자녀에게 갈등이 있거나 화가 나 있을 때, 배우자가 화가 났거나 어려움을 호소할 때, 적극적 경청을 사용하고는 많은 효과를 거두어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화가 크게 나서 씩씩대고 왔다가도 적극적 경청을 사용해서 공감표현을 사용해주면 어느새 잠잠해지고 격했던 감정은 온데 간데 없어집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적극적 경청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어렵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내려놓고 그대로 상대 말을 들어주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술입니다. 관계를 세워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연습과 훈련이 많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저희 아내와 함께 한 교회 수련회에서 적극적 경청을 부부들에게 실시했는데 어떤 아내는 10여년 동안 처음으로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표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남편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와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이후, 그 교회는 모이면 적극적 경청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당시에 참여하지 못했던 커플들에게도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많은 의사소통에 장애물들을 해소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갈등해소와 문제 해결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모’는 단지 들어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큰 어려움들을 해결하고 감사를 표현하며 돌아간다고 합니다.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적은 것이 현 세상입니다. 우리는 좀더 잘 듣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야 할 것 입니다. 쉽게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나 경험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충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도록 듣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상대의 내면 안에 있는 깊은 영적인 필요와 정서적인 필요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관계의 시작은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부모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남편은 아내의 말에, 아내는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바른 관계, 바른 대화, 행복한 관계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이전에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라고 자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호주 기독교 대학 대표 김훈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