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 “적게 먹고 천천히 오래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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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있습니다. 호주에서 한국까지가 아니라 정말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인 것 같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실제적인 거리는 두세뼘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거리인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까지 전달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같습니다. 심지어 몇 십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매 주일마다 설교를 듣습니다. 목사인 저에게는 설교가 매주 제일 큰 부담입니다. 받은 은혜를 연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의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하는 설교일지라도 성도들에게는 오래가지 않는 것같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잊기도 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설교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설교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다 잊고서 설교중 들었던 예화만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보면 설교자로서 많이 실망이 됩니다. 정성껏 준비한 설교가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잊으니까 또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목회자는 또 설교를 준비하고 성도들은 설교를 듣습니다. 그리고 또 잊습니다. 설교를 하고 듣기도 하는 입장이지만 이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너무 많이 듣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면 매일 설교를 듣습니다. 주일에도, 주중 기도회에도, 수요일 밤 예배에도 설교는 빠지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고 또 들어도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설교는 왜 하고 듣는 것일까요?

열심있는 성도들은 매일 큐티를 하면서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리고도 은혜를 사모하면서 유트브를 통하여 취향에 맞는 설교를 듣기까지 합니다.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설교를 들으면 마치 자기가 그렇게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설교는 목사님의 묵상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적용되고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설교가 가슴까지 내려오는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내려가기도 전에 또 다른 설교를 듣습니다. 설교를 듣고 묵상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채 또 설교말씀을 듣습니다. 마치 밥을 먹고 다 소화되기도 전에 또 먹고 또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냉냉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의 문제와 현대 크리스천들의 문제는 동일합니다.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운동은 적게 하고 먹기만 많이 하니 다양한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게 먹고 천천히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해야 합니다.

성경을 먹는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게 먹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느 하나만 정통해도 다 연결되어 있어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약을 제대로 알면 신약도 알게 됩니다. 반대로 신약을 알면 구약도 알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 믿음이 있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사랑을 하게 됩니다. 많이 먹어야 많이 건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강박감입니다. 조금 먹고 많이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일주일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십시오. 묵상이란 되새긴다는 의미입니다. 되새김이 없는 큐티나 잠깐 성경을 읽는 것은 묵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적게 먹고 꼭꼭 씹어서 천천히 오랫동안 먹어보십시오. 그러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색다른 감동이 안에서부터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드니신학대학 천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