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 “예수님이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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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때부터니까 예수님을 믿은 지 벌써 40여년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믿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예수님을 믿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이 정의를 세우는 방법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땅에는 어떤 것이 정의인지 모호합니다. 모두들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합니다. 한 때 정의를 가장 크게 외쳤던 전 대통령은 지금은 정의를 가장 왜곡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정의는 그런 정의가 아닙니다. 그가 세우는 정의는 세상의 정의와 다릅니다. 그것을 세우는 방법이 예수님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좋은 첫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깁니다. 집 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크면 아내의 힘이 큰 증거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목소리를 키운다는 것은 힘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의 힘, 사람 숫자의 힘, 권위와 권력, 인기, 등의 힘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힘을 가지면 그 힘을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돈이 많으면 그 돈으로 뭔가를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용하다 보면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같습니다. 그 순간 겸손한 사람이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힘을 가지고도 힘을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교회도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큰 교회에는 돈도 많고 사람도 많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사람으로 복음을 전파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함의 극치인 십자가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힘은 연약한 사람들을 세우는데 사용될 뿐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두번째 이유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그의 온유함과 인내때문입니다. 갈대는 사람의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갈대가 상해있습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상합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약하고 세상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람이 불면 꺼질 것같습니다. 환경에 흔들려 언제라도 꺼질 것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주목하여 보십니다. 꺼져가는 등불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불씨를 귀하게 보십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에게도, 다섯번이나 이혼하고 여섯번째 같이 사는 남자도 자신의 남편이 아닌 그 여인에게도 그들 안에 있는 존귀함을 보시고 인정해 줍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힘은 바로 이런 힘입니다. 무력과 기득권, 심지어 사람의 힘도 포기해야 합니다. 교회도 돈이 없으면 힘이 없어 합니다. 사람이 많이 않는 작은 교회는 큰 교회에 비해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예수님의 힘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선교를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돈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단은 지금도 교회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천사가 받아주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유혹합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너무 약하여 무능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힘을 추구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 예수님이 가난하고 어린 부부의 큰 아들로 태어난 것을 기억하는 시즌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더 좋아지는 시즌이기도 합니다.

 

시드니 신학대학 천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