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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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후반이 되어가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가 여기 저기에서 붉어져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미 소천하신 아버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 때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지? 나는 아버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등등.

아들에게 아버지는 영원한 모델이고 비교의 대상이며 경쟁상대일지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한다. 네 살 때는 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힘도 참 되게 세다.’ 생각을 한다. 열 두 살이 되면은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열 네 살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모두 구식이다.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고, 스물 한 살이 되면 ‘아버지는 영 골동품이다.’

스물 다섯살이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제법 아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합니다. 서른 살이 되면 내가 결정할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싶다.’ 오십 세가 되면 ‘역시 아버지는 훌륭했다.’ 육십이 넘으면 ‘나는 아버지만 못하다.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하고 모든 것을 아는 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의 아버지 하면 다윗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윗은 본래 목동이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발탁되어서 충성된 장군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울 왕을 위해서 충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서 그는 쫓겨나야 했고 광야를 헤매는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서 유대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와서는 또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압살롬은 셋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형 둘이 죽었습니다. 실질상 지금 첫째 아들입니다. 맏아들이요. 그 인물도 잘났답니다. 출중해서, 머릿결이 좋아서 아주 축 늘어졌는데 모두가 칭찬하고,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었답니다. 온 백성이 추앙하는 그런 아들이었어요. 인기가 있는 아들이요. 가만히 기다리면 아버지 죽으면서 왕이 될 텐데 무엇이 바쁘고 초조해서 아버지를 배반하는 겁니까? 악당들과 작당을 해서 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아버지는 그대로 왕의 보좌를 내 놓고 광야로 피난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방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대열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 내 아들 압살롬이 무사하냐? 불효는 고사하고 이런 패륜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어느 역사에 이런 아들이 있단 말입니까? 용서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지만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이 다 대적으로 생각했고, 원수로 생각 했지마는 아버지는 여전히 저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 그가 죽었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머리채가 나뭇가지에 달려서 매달려 있는 것을 장군이 찔러서 죽였습니다. 통쾌하게 죽었습니다마는 이 죽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못합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침내 구스사람이 기어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이 비보에 아버지는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계속 절규하는 아버지의 통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역사 속에 대리자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로 부름을 받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버지가 되는 일입니다.

이제 인생이 한참 무르익어 열매를 거두어야 하는 이 시기에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아버지보다 더 나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시드니 신학대학 천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