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 사랑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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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도발적인 제목입니다. ‘사랑하지 말라니.’ 큰 애가 아주 어릴 때 차일드케어 선생님이 하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이가 다른 애들을 깨문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안그러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더니 제가 늦게 얻은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유 귀여워!” 하며 볼을 깨물었더니 아마도 사랑하면 깨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사랑을 하면 할수록 다른 아이들은 더 크게 울게 된다. 이것이 어찌 제 아이의 어린 마음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이유로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괴롭고 힘들어 하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잔소리도 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그 발걸음을 옮기기를 바래서 질책도 하고 격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 너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할수록 아픕니다. 차라리 사랑을 안한다면 오히려 나을 것 같습니다. 행복해야 할 부부가 원수 같습니다. 환하게 웃고 대화해야 할 연인들이 아파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어디서 잘못되고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는 옛 시인의 말은 아득한 옛 말일뿐 입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신앙이 좋으면 사랑이 많을 것이다. 교회를 오래 다녔으니까 사랑이 많을 것이다. 교회의 목사이니까, 또는 장로이니까 사랑이 많겠지, 심지어 방언이나 여러가지 은사가 있으니까 사랑이 많겠지. 모두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을 순진하게 사는 것입니다.

실제는 이렇습니다. 신앙이 좋으면 사랑이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은사가 있다고 꼭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고린도교회는 많은 은사가 있었던 교회였지만 정작 사랑이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바늘 하나 꽂을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서로 자기의 말을 들어 달라고 외치면서 상대의 말을 들어줄 1분의 여유도 없는 것을 봅니다. 갈등과 많은 문제들은 사실 사랑이 없거나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유입니다.

사랑은 ‘사랑합시다’고 외친다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었다고 저절로 솟는 본능적인 사랑도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본능적인 사랑은 얼마든지 부모의 욕심과 이기심, 또는 부모의 연약함으로 오염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이런 오염된 사랑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참 사랑은 영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본능적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참 사랑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사랑을 깨달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집니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또는 불쌍히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입이 열립니다.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칭찬을, 불쌍히 보이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뭔가 친절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아픈 사랑을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받으십시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사람은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드니 신학대학 천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