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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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을 보냈습니다. 더운 호주에서 왠 추사감사절?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국의 정서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한 해의 감사를 하면서 자신의 감사를 표현하는 과일이나 채소를 가져와서 왜 그 과일 또는 채소를 가져왔는지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쌀을 가져온 성도는 셀 수 없는 감사가 있어서. 파인애플을 가져온 성도는 한 해가 파인애플처럼 껍질은 단단하고 가시처럼 돋아 있지만 안에는 달콤한 과즙의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불사하고 메이플라워 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톤의 메이플라워 호는 146명이 항해하기에는 작은 배였으며, 사람들은 항해 도중 파도의 위험뿐 아니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들이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을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전염병까지 돌아서 봄이 되지도 전에 44명이 목숨을 잃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대륙의 기후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을 가지고와 토양이 다른 낯선 땅에 심어 첫 농사에서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당했으며,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고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을 도왔습니다. 인디언 추장인 사모세트는 몇 종류의 씨앗을 가져다 주었고, 재배 기술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의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잔치를 열었습니다.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해 함께 나누어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이 된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감사의 예배를 올렸을 때는 그들이 아직 황무지 벌판에 있었을 때입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닐, 옥수수와 감자 몇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때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넘쳐나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황무지에 씨를 뿌렸을 때 열매를 주신 하나님, 겨울에 심한 추위와 싸웠으나 통나무집을 주신 하나님, 생명을 위협하는 인디언도 있었지만 낯선 외국인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쳐준 착한 원주민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감사를 발견한 것이 추수 감사절의 정신이었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습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했습니다.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했습니다.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했습니다.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감사함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을 뛰어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겐 불평할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며 감사할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시드니 신학대학 천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