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컬럼]“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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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20년 넘게 산 호주이지만 한여름의 여름은 적응이 되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거리에 울리고 추운 아침 일찍 새벽송 돌던 그런 크리스마스가 그립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서 팔기도 하고 직접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가 그 때에는 유행했었습니다. 그걸 파느라고 수고하였던 추억이 아득합니다.

교회의 강대상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의 구유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런 크리스마스가 그리운 반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정감이 가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람이든, 환경이든, 입맛이든 사람의 첫 정이란게 그렇게 깊은 것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난한 젊은 부부의 큰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외모는 연약한 몸으로, 여러 병치레를 통해서 병의 고통을 많이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오늘날 호주의 어린아이들과 달리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그런 가난한 부부를 선택해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부처는 궁정에서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공자도 그렇게 가난한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마호멧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올 때만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사역 중에도 많은 오해와 질투,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렇게 가난한 가정에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고 좋은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800년 전에 사역하였던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예수님의 어려움이 우리의 연약함과 죄의 결과를 이 땅에 경험하는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삶은 이 땅의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지고, 우리의 고난을 당하며, 우리의 실수와 죄악을 지고 가신 것입니다.

어떤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병고치기 위해 기도하면 그 병의 고통과 아픔이 자신에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품고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을 해결하면 아픈 사람의 병이 실제로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슬픔, 우리의 가난, 우리의 죄를 자신의 몸에 다 감당하고 그것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어려운 삶을 보고 얼마나 죄가 많으면 그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까? 하면서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의 모든 고통이 바로 많은 사람들을 위해 당하는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시하여 우리의 병을, 가난을, 죄를 해결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외쳤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처럼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를 동일시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동일시하여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시드니신학대학 천용석교수]